자신의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마치 기계의 오류처럼 감정의 오류가 일어난 건 아닌지 착각한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될 때도 있지요.
그건 감정이라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크를 케이크 칼로 깨끗이 절단한 듯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나 홀로 그대』 4화에서는 '소연'이 '홀로'의 위로에서 지금까지와는 없었던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실은 그 위로를 한 건 '홀로'가 아니라 '난도'입니다.
'난도'는 '홀로'가 할 법한 위로를 했다고 하지만 '난도'의 인간적인 면이겠지요. 아마 '소연'의 아픔에서 자신의 '아픔'을 보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위로를 상대에게 한 걸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난도'는 '감정이입'이라는 인간적인 기능에서 산출된 표현으로 제대로 위로를 합니다. 마음에 와 닿았다.. 겠지요. 그걸 계기로 '소연'은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그런데 그럼 '소연'이 사랑에 빠진 건 '홀로'일까요? '난도'일까요?
사랑에 빠진 건 완벽하고, 다정다감한 '홀로'에게 축적되어온 감정에 '난도'의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어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똑같은 위로를 받는다고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럼 사랑의 대상은 '홀로'인 걸까요?
그런데 '난도'는 '홀로'의 모델.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건 '난도'가 가지고 있는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적용하여 다른 처리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홀로'라고 봅니다.
그럼 사랑의 대상은 '난도'인 걸까요?
'소연'은 결국 그 이후로 '홀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인간'이 아님을 알기에 '소연'의 고뇌가 시작이 됩니다. 사람에게 투정 부릴 법한 투정을 부리지만 '홀로'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인간의 형상을 가졌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소연'과 '홀로' 이 두 존재의 대화 장면은 비단 '인간'과 '인공지능' 간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때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여 커다란 벽이 쾅하고 놓이기도 하니깐요.
정말 전혀 다른 별세계의 사람들이 언어로 '소통'을 하고 있지만 감정의 '불통'일 때가 있습니다.
정치가 그렇고 국제관계가 그렇지요. 뭐 이렇게 크게 볼 필요도 없이 가깝게 보면 집안에 여러 관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친인척 관계, 고부관계, 사돈 관계,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관계, 형제자매 관계 등등등.
결국 '나'와는 같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 글을 읽고 '소통'이 된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이지요. '소통'이 되어서 '공감'이 되는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감'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똑같음'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단순한 작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감정은 그 경계가 모호하니까요.
나의 '행복하다'의 감정도 오늘의 '행복함'과 어제의 '행복함'이 면밀히 말하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남의 행복함'은 얼마나 다를까요? 하지만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래도 그 차이의 간격은 좁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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