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제 더운 날씨 속에 김밥 패딩을 입고 어찌어찌 북구청까지 갔잖아.
정말 고향은 날이 덥더라.
아휴.. 정말 나만 김밥 패딩을 입고 있었어.
그런데 돌아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그대로 입고 가다가
체감상 거리와 실제 거리의 오류로 인해 꽤 걸어가야 하는 상황에 결국 승복!
김밥 패딩을 벗어서 옆구리에 끼고 걸었어.
그래그래 도착한 북구청에서 서운할 정도로 빨리 목적을 이루고
다시 혼미해질 만큼 걸어야 할 거리를 생각하며 아찔해하고 있는데
문학 자판기라고 있더라.
분명 예전에 엄마랑 왔을 때도 봤는데
기억이란 이렇게도 유지력이 약해 벌써 다 까먹었었어.
야무지게 까먹은 덕분에 보자마자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오~ 이런 게 있네 하며 신기하게 봤어.
긴 글 문학 인쇄가 있고, 짧은 글 문학 인쇄가 있더라.
긴 글 문학 인쇄를 누르니,
오스카 와일드 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나왔어.
아쉬워서 짧은 글 문학 인쇄를 또 누르니,
안리타 님의 '사라지는, 살아지는'이라는 작품이 나오더라.
한 인간이 가지는 사연이 우주의 별처럼 무수한데
그중에 하나 얻어걸린 두리뭉실한 이야기가
마치 유일한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운명론적 착각의 오류를 범하며
내 이야기 같다, 어쩜 나의 상황에 딱 들어맞지?, 이런 우연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에잉! 정신 차려!! 하며 바로 이성적 사고를 발현해서 쓱쓱 걷어냈어.
평정을 되찾으며 나가려다 입구에 있는 혈압계가 있기에
지나치지 않고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오른쪽 팔뚝을 쑥 집어넣었어.
116/89더라. 엥? 혈압이 왜 계속 오르지?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쟀어. 106/77이 나오더라.
예전엔 100이 넘지 않았는데 이젠 100이 계속 넘네.
그런데 숨 한 번에 10이나 떨어졌으니 숨 두 번 들이쉬었으면 20이 떨어졌을까.
오랜만에 간 북구청에서
감성 자판기(문학 자판기지만 난 감성 자판기라 부를게, 엄마)와 혈압체크까지
보람차게 하고 나왔어.
걷기까지 했으니 나름 뜻깊은 하루였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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