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은 노모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늙은 어머니의 모든 행동은 자신을, 다른 가족들을 괴롭히기 위한 심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꾀가 많고 영악한 어머니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족을 들들 볶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마는 성미 고약한 노인일 뿐입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관심을 받기 위해 못 걷는 척하는 어머니.
여행을 가자고 말을 하면 되는데 히스테리를 부리며 온 집안을 뒤집어엎어버리는 어머니.
거짓말로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이는 어머니.
보기 흉한 화장이 점점 진해지는 어머니.
죽음이라는 무기로 가족들을 협박하는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이해 안 가고 오로지 가족들을 괴롭히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요.
의사마저도 어머니의 평가는 썩 좋지 못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치의였던 내과 의사는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정신과 병동으로 옮기셔야겠습니다. 노인성 히스테리가 심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괴롭겠습니다. 저런 증상은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고 괴롭히게 마련입니다. 저런 분을 간호하다간 주위 사람들도 히스테리가 되기 쉽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히스테리도 전염되니까요."
의사의 이 말은 주인공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을 겁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그러나 이런 생각도 저는 해 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늙은 자신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늙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심리 또한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나이가 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사 역시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 역시 도달하지 못한 늙은 그들의 심리를 알 수 있을까요?
노인성 히스테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닐까요?
어머니의 마음은 어머니만이 아는 영역일 것입니다.
늙어가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루하루 다르게 꺼져가는 생명의 불에 어떠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순응을 하다가도 부정을 하고, 부정을 하다가도 순응을 하게 될 것입니다.
평생을 자식들을 키우는 데에 힘썼습니다.
하루 24시간 매 일 분 일 초가 자식들이 중심이고, 자식들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어느새 장성해서 마치 혼자 큰 듯 행동합니다.
어머니는 압니다.
내리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안다고 해서 섭섭하지 않으실까요?
가끔 와서 얼굴 비추는 자식에서 섭섭함이 없으실까요?
"(생략) 이런 말은 하지 않던가요? 며느리들이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큰아들 작은아들 둘 다 자가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 년이 넘도록 여행 한번 시켜주지 않는다......"
"......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두 아드님이 번갈아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시켜 보시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은 속으셨습니다. 저희들은 자주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해요."
어느 누구도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늙어버린 어머니에게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은, 젊은 아들의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주인공인 작은아들이 나쁜 아들일까요?
어머니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저 히스테리라 단정 짓고, 괴팍한 심보라며 툴툴거리는 아들일까요?
아들은 어머니의 '나이 듦'을, '남은 여생'을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닐까요?
보통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아무리 커도 자식은 부모 눈에 아기라고.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부모님께서 늙으셔도 정정하시다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 부모님은 청춘이라고.
주인공은 어머니의 '걷지 못함'을 가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걷지 못함'을 실제로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어머니의 '늙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늙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느새 찾아올 슬픈 이별의 다가옴도 수긍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걷지 못함'은 '가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세 발짝도 걸음을 떼놓지 못하셨다. 풀썩하고 자리에서 쓰러지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설 수 없었다. 북받쳐 오는 슬픔이 눈물이 되어 내 얼굴에 흘러내리고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비애로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흐느껴 울면서 소리 질렀다.
"어머니 일어서세요. 그리고 제 곁으로 오세요. 썩어져 죽을, 저산까지 걸아가세요. 일어서세요. 어머니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프고 괴롭지만, 주인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늙음을.
아니 어쩌면 주인공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장성한 만큼 어머니는 늙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는 이미 늙으셨다는 것을. 그저 그 사실이 슬퍼서 모르는 척, 부정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북받쳐 오는 슬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는 그런 주인공의 마음을 너무나 잘 대변합니다.
그러나 아직 어머니와의 슬픈 이별을 수긍할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이야기합니다. 어머니에게 오라고. 자신이 있는 이쪽으로 오라고.
최인호 작가님의 『방생』은 참 심오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인호 작가님의 모든 작품이 그렇긴 하지만요.
그런데 아마 이 작품은 제 나이를 먹음에 따라 매번 읽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감정이 더 커지고 새로운 감정이 더해지는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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