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는 밤마다 술집을 전전하며 낯익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향해 아는 체를 하며 인사를 합니다.
아이를 발견하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는 슬그머니 그 자리로 갑니다.
매일 밤 이집저집 술집을 전전하며 아버지를 찾는다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술 한 잔을 받아먹습니다.
그 행동은 전혀 아이답지 않은 노련함마저 있습니다.
아버지를 찾는 이유는 항상 같습니다.
어머니가 피를 토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그러니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고.
그럼 어른 역시 항상 같은 말을 합니다.
너희 아버지는 딴 데 갔다고 말이지요.
한두 잔을 얻어먹은 아이는 또 다른 술집을 향해 갑니다.
들어가기 전에 아는 얼굴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아는 이를 발견하면 아이는 아까 전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합니다.
어른들도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 대목을 통해 아이는 항상 같은 이유를 말하고, 어른들은 같은 이유를 듣고도 항상 모른 척합니다.
아이의 거짓말에 어른들의 거짓말이 더해집니다.
하지만 모르는 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거짓말임을 압니다.
그래도 서로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술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 존재임을 어른도 아이도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술집의 어른들은 저마다 이상합니다.
하지만 술을 찾아 헤매는 아이 역시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그 술은 또 다른 괴로운 현실을 낳습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 서슴없이 길거리에 쓰러진 취객의 주머니를 뒤집니다.
아이는 돈을 발견하고는 마지막으로 들릴 술집이 행여 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이 나서 뛰어갑니다.
닫힌 문에 실망한 것도 잠시 아이는 결심한 듯 문을 두드립니다.
작부는 익숙한 아이의 모습에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 아버지는 벌써 가고 없다고.
하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아버지는 필요 없다고.
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위한 수단입니다.
돈이 없는 아이가 팔 수 있는 거라고는 죽어가는 어머니가 찾는 술꾼 아버지일 뿐입니다.
마지막 술을 마시고
흔들리는 걸음으로 아이가 찾아가는 곳은 고아원.
처음에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는 고아원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의 아이에게는
방금 피를 토하며 아버지를 찾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이집저집 술집을 배회하는 아버지 또한 없습니다.
아이는 술을 마시기 위해 같은 거짓말을 반복합니다.
어른들 역시 아이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술 한 잔을 나누어 줍니다.
비단 오늘 밤만의 일이 아닙니다.
어제의 일이고, 오늘의 일이며, 내일의 일입니다.
아이는 내일도 술을 마시러 간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고아원으로 들어갑니다.
(※현재에는 '고아원'이 아니라 '보육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이 작품이 쓰인 시대에는 '고아원'이라는 명칭을 썼기 때문에 작품에서도 '보육원'이 아니라 '고아원'으로 쓰여 있습니다. 줄거리나 감상평을 쓰면서 '보육원'을 사용할까 하다가 원작의 느낌을 살리고자 원작 그대로 '고아원'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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