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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인호 님의 『타인의 방』_모든 것이 낯설다, 자신마저도..

책 이야기

by 푸른안개숲 2020. 10. 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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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있었던, 너무나 익숙하던 '나의 공간'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으신가요?

 

현관, 복도, 방, 거실, 주방, 욕실 등등 반복되는 일상의 모든 평범한 일이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방.

그런 방이 이유도 모른 채 마치 먼 우주의 공간처럼 낯선 곳으로 느껴져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적 있으신가요?

 

항상 보는 '나의 얼굴'이 문득 타인처럼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으신가요?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모습, 길을 걷다가 무심코 바라본 가게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우연히 친구의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

살아온 세월만큼 바라봐서 눈에 익었다고 생각해 왔던 자신의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인식된 적은 없으신가요?   

 

 

출처: https://pixabay.com/

 

 

최인호 님의 『타인의 방』은 자신과 타인, 자신과 자신 간의 온전한 고독, 단절, 소외를 표현한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출장을 끝내고 이른 귀가를 한 남자는 아내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지요.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아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웃집이라고 해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르니 그의 행동은 집주인이라기보다는 위험한 인물이 되지요.

 

"전 이 집의 주인입니다."

"뭐라구요?"

(중략)

"우리는 이 아파트에 거의 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소."

(중략)

"당신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래 이 집 주인을 당신 스스로 도둑놈이나 강도로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나두 이 방에서 삼 년을 살아왔소. 그런데두 당신 얼굴은 오늘 처음 보오. 그렇다면 당신도 마땅히 의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겠소."

 

아주 옛날이야 옆집에 누가 살고, 더 옛날이야 가족단위, 친척 단위로 한 마을에 살아 서로가 서로를 모를 수 없는 구조였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알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합니다.

 

 

실랑이에 기분이 상한 남자는 집으로 들어왔는데,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메모를 남겨두고 부재중입니다.

 

여보, 오늘 아침 전보가 왔는데, 친정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거예요. 잠깐 다녀오겠어요. 당신은 피로하실 테니 제가 출장 가신 것을 잘 말씀드리겠어요. 편히 쉬세요. 밥상은 부엌에 차려놨어요.

당신의 아내가

 

살가운 메모 같지만 남자는 씁쓸합니다. 실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예정일보다 일찍 도착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아내는 집을 비운 지 오래되었던 겁니다.

 

거짓말.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마저 남자는 단절되고 소외되었습니다. 그 고독에 남자는 점점 우울해지지요.

 

 

욕조에 들어간 남자는 지친 몸을 씻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무심코 중얼거린 자신의 목소리에도 낯섦을 느끼게 되지요.

 

역시 집이란 즐겁고 아늑한 곳이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무심코 중얼거렸지만 그는 순간 그 소리를 타인의 소리처럼 느꼈으며 그래서 놀란 나머지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가끔 혼잣말이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럼 그 목소리의 차가움에 움찔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은 느낌, 마치 내가 아닌 느낌에 자신마저도 낯설게 되어버립니다. 

 

 

소설 속에서는 남자가 이웃과의 단절, 아내와의 단절, 본인과의 단절에서 오는 소외와 고독뿐만 아니라 사물에게서마저도 단절되는 현상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남자 자신마저 사물이 되어버리지요.

 

또한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 반복되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아내가 등장하고 의미 동일의 메모를 또 작성합니다. 최인호 님은 비슷한 메모를 통해 결국 남자의 고독, 단절, 소외가 끝나지 않고 계속됨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번을 읽었는데 의미를 조금씩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어둡고 우울해지는, 살짝은 무섭기까지 한 『타인의 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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