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이라는 나무에 상처와 아픔이라는 생채기가 여기저기 크고 작게 생기지요. 아직도 낫지 않은 상처에 흐르는 피를 씩씩하게 아픔을 삼키기도 하고,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나아버린 상처의 흉터 자국이 낯설게 남아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바라보기도 힘든 상처가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어떨 땐 전혀 낫지 않은 그쪽을 보는 게 무서워 눈을 돌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나 홀로 그대』 1화를 보고 난 후에 적은 감상평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상처와 아픔이 결국 가변적인 인간관계에서 약점이 되기 때문에 사람은 그걸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그런데 『나 홀로 그대』 3화에서는 '홀로'의 창시자 격인 '난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아픔을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에게 밝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상처에는 단계적으로 번호 매김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낮은 '레벨 1이냐', 가장 높은 '레벨 10이냐'부터, 이것이 '공개용이냐, '비공개용이냐'로 다양하게 분리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 레벨과 공개-비공개의 번호 매김이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상처에 대해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난도'가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에게 밝히는 상처는 '난도'에게는 레벨 1에 공개용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소연'과 '소연의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결코 레벨 1에 공개용이 아니었지요.
그럼 으레 그런 말을 나오게끔 상황을 만든 사람이 사과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난도'는 '척'하기 싫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당히 밝히는 거지요. 레벨 1에 공개용이니까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람마다 상처의 번호 매김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생각했던 번호 매김보다 낮게 책정한 사람들을 보면 상처를 극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일하던 곳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떳떳하게 밝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나 그런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도 숨김없이 이야기를 했고요.
그게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저는 저의 상처와 아픔을 떳떳하게 밝힐 생각도 없으려니와 그런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솔직하게 마주 본 기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은 저에게 아주 당당해 보였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남에게 말을 한 게 멋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 봤다는 용기가 말입니다.
그날 이후 저도 이제껏 꽁꽁 싸매어두었던, 꺼내기 힘들었던 제 상처와 아픔을 마주 보았습니다.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했지만 그건 마음 한 곳에 계속 자리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그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도망'이었으니까요. 치유를 위해 괴로워도 마주 보고 또 마주 보았습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와 아픔도 사라지지 않고요.
하지만 최소한 그것을 마주 보고 인정하고, 그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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