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난도'는 '홀로', '홀로'는 '난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화에서는 참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인공지능인 '홀로'에게 절대 영역과도 같은 사랑이라는 기능까지 추가되어 말 그대로 혁신과학기술의 결정체였는데,
그 감정 즉 '홀로의 사랑'에 대해 '난도'는 창조주로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제도 플라토닉 러브, 에로스 러브란 말을 하며 사랑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나 홀로 그대』 9화에서는 앞서 말한 사랑의 형태 말고도 또 다른 사랑의 형태가 나왔습니다.
바로 '홀로'의 사랑, 인도주의적 사랑입니다.
인도주의적인 사랑인 '홀로'는 아주 바른 교과서적인 사랑 방식을 논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 우리 모두 사랑을 외칩니다. 하하하.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투라는 감정이 있을 순 없습니다.
질투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질투라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거죠.
따라서 '난도'는 이를 발견하고는 '홀로의 사랑'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오직 하나'라는 '난도'.
'우리 하나'라는 '홀로'.
하지만 '홀로'는 여전히 성장형 인공지능입니다.
어찌 되었든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지요.
『나 홀로 그대』 8화에서 기억을 잃고 자신의 공간에 나 홀로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더 이상 '인공지능'의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반면 난도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면서 인간적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떼도 쓰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감정을 밀어붙이기도 하고, 후회도 하고, 욕심도 부리고, 질투도 하고, 보고 싶어서 찾아가기도 하고..
이제까지 자신의 마음 한 편에 꾹꾹 눌러 담았던 여러 감정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흔든 캔콜라 마개를 따니 사방으로 여기저기 튀는 거품처럼 말이죠.
인공지능이지만 인간 같은 '홀로'.
인간이지만 인간이 되어 가는 '난도'.
이 두 존재가 점점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나 홀로 그대』라는 드라마를 보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하는 대상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요.
그런데 '소연'은 어떨까요?
인간 같은 '홀로', 마음 따뜻하고 상냥한 '홀로', 완벽한 '홀로'를 사랑합니다. 게다가 평생 옆에 있어 주겠다고 하고 항상 자기만 바라봐 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음 100%로 바람피울 일은 절대 없겠죠. 바이러스에 걸려서 앓아누울(?!) 수는 있더라도 말이죠. 후후후.
하지만 『나 홀로 그대』 4화 감상평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불완전한 존재에 대해 공감과 위로'가 '소연'을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때도 그게 이미 축적된 긍정적인 감정을 전제로 하여 '위로'라는 것이 도화선이 되어 '사랑'이라는 결실이 이루어지긴 한 거라고 했지만, 어쨌든 '홀로'가 아닌 '난도'의 말로 인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습니다. 또한 유일하게 얼굴을 볼 수 있는 상대이기에 '운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자신이 흔들린 모든 순간의 존재가 '홀로'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난도'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난도'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소연' 역시 '난도'에게 마음이 갑니다.
그건 결국 인간은 완벽한 존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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