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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르키 바트만'을 통해 본 우월주의, 성차별, 인종차별..

신문 이야기

by 푸른안개숲 2020. 6. 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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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ixabay.com_'사르키 바트만'의 넋을 위로하며..

 

인간은 참으로 잔인한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종간의 잔악함이 아니라 동종 사이에서도 말이지요. 피부색이 다른 것만으로, 성별이 다른 것만으로도 인간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잔악함을 보여줍니다.

 

꽤 예전에 어느 신문 기사를 보고 읽는 내내 분노에 몸서리쳐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르키 바트만' 관련 기사였습니다. 신문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인물이었지요. 그런데 기사를 접하면서 알게 되었고,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 모든 문장들이 너무나 잔악무도하여 치를 떨 수밖에 없었고, 그런 삶을 산 한 여인의 기구함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9세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코이코이족의 '사르키 바트만'이 유럽 여러 도시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 취급을 받으며 전시되고 구경되다가 죽어서도 프랑스에서 신체를 난도질당하고 박제되어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20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평안을 찾게 된 사연입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그녀가 유럽으로 가게 된 배경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백인들의 공격을 받아 부족 대부분이 사망했는데, '사르키 바트만'은 살아남아서 유럽으로 팔려 갔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약혼식 축제를 벌이던 중 백인 정찰대에 납치되어 어느 집에 노예 생활을 하다가 고용주에 의해 유럽으로 팔렸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간에 두 가지의 공통점은, 어찌 되었든 '사르키 바트만'이 유럽에 가게 된 이유는 백인에게 팔려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백인과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개인이든 나라든 권력을 지닌 존재가 곧 특권층이 되어 모든 것들의 기준이 되고 그에 반대되는 것은 하등하고 열등한 것으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그래서 유럽인들과 다른, 코이코이족 사회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신체가 그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어 인간 전시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사를 보니 '사르키 바트만'은 광장, 대학, 서키스 등에서 나체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르키 바트만'을 향한 이런 비인도적인 행위는 결코 그칠 줄 모르고 '사르키 바트만' 사후에도 프랑스 해부학자에 의해 뼈와 성기, 뇌 등이 실험실 유리병에 담기고 신체가 박제되어 프랑스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인권단체 중심으로 유해 반환 시위가 일어났지만 프랑스 측에서 '타국에서 유입된 유물은 프랑스 소유'라는 관련 법규를 들이대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의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인권단체에서 '사람의 신체는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는 다른 법 규정을 들어 프랑스 정부를 비난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프랑스 모든 국민, 정부의 모든 구성원, 프랑스 박물관의 구성원들이 다 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 찬성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모르는 사람 등등 다양했겠지요. 다만 가장 큰 힘을 싣고 있는 주장이 어떠한가, 그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행위를 취했는가는 진지하게 살펴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2002년 5월 프랑스는 악화되는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사르키 바트만'의 유해를 200년 만에 본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어떠한 목적성을 가진 여론인지, 또 악화되는 여론이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 내부에서도 일어난 것인지 알고 싶은데 그건 확인할 수가 없었네요. 어찌 되었든 '프랑스 정부'는 '악화되는 여론'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사르키 바트만'의 매장식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타보 음베키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8천여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후 '사르키 바트만'의 삶을 그린 책 등도 출판되고, 연극도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사르키 바트만'을 향한 우월주의, 성차별, 인종차별을 잊지 않게 위해 경각심을 주기 위해 책도 연극도 만들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우리 삶 속에는 제2의 '사르키 바트만', 제3의 '사르키 바트만'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래는 부경대 사학과 박원용 교수님이 쓴 제국주의-식민지 지배 관점에서 살펴본 '사르키 바트만'에 대한 글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하네요.

 

www.mk.co.kr/news/business/view/2012/12/847180/

 

`열등인종의 비너스` 로 삶을 마감한 사라 바트만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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