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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부치는 삼백 번째 편지 - 케이크 -

엄마에게 부치는 편지

by 푸른안개숲 2024. 10. 2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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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작년 초에 내가 고향집에 내려가서 설 연휴를 보냈을 때 기억나?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늦은 저녁에

엄마랑 나랑 불 꺼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잖아.

엄마가 좋아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고 있었어.

 

벽에 등을 기대어 포근한 이불 하나를 엄마랑 나란히 하체만 덮고

우린 오직 TV 불빛만이 비치는 은은한 거실에서 그렇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지.

 

.. 엄마가 기회가 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말할게.

 

엄마는 갑자기 이야기를 했어.

아니, 엄마는 말을 꺼낼 타이밍을 기다린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

우연히 생각난 듯, 마침 떠오른 듯, 무심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이 말을 할 기회를 기다린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

 

엄마가 언젠가 떠나도

제사 지내지 마.

 

갑자기 무슨 얘긴데?

 

응, 엄마가 언제 얘기하고 싶었는데

지금이 기회가 돼서 말을 하는 거야.

엄마가 떠나도 제사 지내지 마.

 

...

 

케이크 먹어. 

그날 케이크 먹어.

 

...

 

케이크 먹어. (출처: 픽사베이)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켰어.

마치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면 그건 말이 아닌 울음일 것 같아서

난 그 어떤 말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불 켜지지 않은 거실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차오르는 눈물을 훔쳤어.

그리고 엄마는, 그리고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어.

 

설 연휴가 끝나고 고향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고 이튿날이 되는 어느 밤.

흐릿한 어둠이 깔린 침실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던 그날 밤.

마치 그날의 불 꺼진 거실과 비슷한 분위기의 어느 날 밤.

 

나는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내뱉었어.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어.

그날 울지 못한 눈물이, 참았던 눈물이 이제야 터진 듯이 그렇게 울었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

케이크.

생일이나 기쁜 날에는 꼭 먹는 음식,

케이크.

 

..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에

내가 많이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한 케이크를 먹기 바란 거야.

내가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바라며

엄마가 달래줄 수 없기에

그러한 케이크를 먹기 바란 거야..

 

엄마는

그 순간마저도 

내 걱정을 하는 거야.

내 걱정만 하는 거야..

 

모든 순간에도 내 걱정만 하는 엄마.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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