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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인호 님의 『영가(靈歌)』_어린 시절의 신비 체험

책 이야기

by 푸른안개숲 2020. 6. 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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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ixabay.com

 

성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분명 자신이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일어났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과학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것이 착각인지 상상인지 그 존재 자체도 의심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번복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도 생각을 합니다. '본인 믿음'과 '본인 의심'이 혼재된 상태에서 '확실'과 '불확실성'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최인호 님의 『영가(靈歌)』도 이런 부류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가(靈歌)』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년과 외할머니와의 짧은, 그러나 강렬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어린 주인공을 외가에 맡기고 홀연히 떠납니다. 그런데 시작 줄에서 '잠깐 시골에 머물러 있었던 적'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아마 어머니는 곧 다시 돌아와서 어린 주인공을 데리고 갔겠지요. 

제 생각에는 이러한 '잠깐 머물렀다'는 설정이 추후 어린 주인공이 경험한 사실이 더욱 신빙성 있게 느껴지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계속 머물렀다면,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 지내어 왔다면 그런 기이한 체험에 대해 성인으로서의 해석이 붙게 되니까요. 어린 시절의 체험과 성인으로서의 고백(?) 사이에 시간적 단절이 길게 놓여야 독자로 하여금 그의 신비한 체험이 좀 더 그럴듯하게 사실처럼 느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할머니 댁에 맡기는 첫 장면을 읽자마자 영화 『집으로』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집으로』에서도 어린 상우(유승호 분)가 외할머니 댁에 맡겨지게 되면서 시작되니까요. 인물 설정에서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영가(靈歌)』도 『집으로』도 교류가 없었던 외할머니와 손자 간의 인물 설정이라고 한다면, 차이점은 『집으로』는 산골 마을에 가족은 어린 상우와 외할머니밖에 없지만 『영가(靈歌)』에서는 바다가 멀리 떨어진 어촌에서 어린 주인공과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좀 특이한 친척들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특이한 인물을 배치함에 따라 어린 주인공이 조금은 기이한 집에 기거하게 되었고, 그런 기이함이 다가올 체험 역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주는 배경이 됩니다.

 

어린 주인공과 또래의 친척 애도 등장을 하는데, 그 친척애는 어린 주인공의 외할머니에 대해 '늙은 귀신'이라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바다에 대해 모르는 어린 주인공이 마을 근처에(있다고 해도 산 두 개를 넘어야 하는 곳이지만) 있는 바다로 안내해 달라고 하자 바다에 대해 얼토당토 한 정보를 알려주고 '눈 벌레를 밟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눈이 걷히면 데려가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눈 벌레'가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눈(雪) 아래 까맣게 깔려 있다고 하는 걸 보면 겨울잠을 자는 벌레(?)인가 싶기도 하고, 잘은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말은 아마도 친척 어른들이 아이가 혼자 겨울에 그 먼바다에 가는 걸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한 듯합니다. 기이한 어른들이지만 아이의 위험을 미연에 차단하는 어른으로서의 행동을 하기는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집안의 가장 어른인 외할머니를 '늙은 귀신'이라고 아이가 말하는 건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한 어린 주인공에게도 외할머니의 방에는 가지 말라고도 이야기를 하지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기이한 친척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추측해 볼 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바다 근처 산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묘지에 가는 장면에서 외할머니는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까 정말 살 것 같은데 아저씨가 방 속에 가둬놓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기이한 친척들은 왜 외할머니에게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외할머니, 죽은 매화나무에 손을 닿아 꽃을 피우는 외할머니, 사뿐사뿐 무덤 주변을 돌아 돌아 꽃잎을 띄워 무덤을 덮은 외할머니, 절대 내려오며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외할머니, 절대 오늘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외할머니.

이런 기이한 태도를 유추하여 보면 외할머니 역시 기이한 분이시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평범한 분은 아니시겠지요. 그렇게 때문에 기이한 친척들 역시 외할머니에게 거리를 두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소기의 목적(?)을 위해 본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어린 주인공을 끌어들인 거겠지요.

 

그 어린 시절에 아무에게도 후에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할머니와의 약속에 성인이 된 주인공은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언젠가 '고백될 성질'임에도 지금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주인공. 묘한 여운을 주며 끝이 납니다. 왜 '고백될 성질'일까요? 외할머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짧은 단편입니다. 여기에 쓴 글들은 100%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아마 『영가(靈歌)』를 읽은 혹은 읽을 분들은 읽고 나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하나의 이야기라도 읽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면 그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즐거운 일이지요. 어느 분이라도 『영가(靈歌)』에 대한 감상을 짧게라도 댓글로 달아주신다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생각은 '틀림'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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