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린 시절
고개를 들어 바라본 내 시선에는
오롯이 엄마만 보였어.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엄마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
우리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좁혀지지 않았지만
마주 잡은 두 손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든든했어.
난 그렇게 엄마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뗐어.
엄마는 날 위해서 거꾸로 가는 걸음을 마다하지 않았지..
그다음으로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었어.
나의 어눌은 걸음걸이도,
나의 느린 속도도
엄마는 한없이 기다려줬어.
엄마의 한 손을 꼭 쥐고 나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았어.
엄마는 그 와중에도 고개 숙여 나만 바라보았지..
엄마 키만큼 자란 나는
어느새 엄마의 손을 놓고 옆에 나란히 서서
엄마와 같은 속도로 걸었어.
가끔 엄마를 보며 웃고
엄마도 나를 보며 웃고.
우리는 그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어..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엄마와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어.
하지만 우리가 가는 방향은 결국엔 같기에 나는 나아갈 수 있었어.
내 길을 걷지만 곧 다시 우리의 길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항상 엄마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테니
내가 다른 길을 가도 곧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곧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잘 갔다 올 거라며 내 길을 걸었어.
그리고 엄마는 내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줬어.
웃으면서 손 흔들어 줬어.
혼자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우리의 길을 엄마가 천천히 걸으며
내가 돌아올 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난 힘을 냈어.
그래 난 힘을 냈어.
빨리 갔다가 돌아오자고 힘을 냈어.
그런데 아니었어.
엄마도 엄마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
그렇게 엄마는 엄마의 길을 걸어갔어..
그렇게 엄마는 혼자 걸어갔어..
미안해 엄마..
엄마는 항상 내 손을 잡아 줬는데..
항상 나만 바라봤는데..
내 뒤에서 미소 지어 줬는데..
난 엄마에게 뒷모습만 보였어..
그리고 엄마가 혼자 가는 것도 몰랐어..
엄마
난 내가 용서가 안 돼..
내 자신이 절대 용서가 안 돼..
..
엄마..
엄마가 본 건 뭘까..
엄마의 눈앞에는 뭐가 있었을까..
내 뒷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아름다운 풍경이었을까...
그리운 분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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