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서 일하기 싫고 커피숍 쿠폰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일거리를 챙기고 커피숍으로 갔어.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한자리를 떡하니 잡아 앉았어.
하지만 바로 일은 안 하고 책 한 권 꺼내고 읽고 있는데 잠시 후 어느 모녀가 들어와서 내 앞에 앉았어.
인생의 눈서리를 맞기 시작한 엄마와 입가에 깊다란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딸이었어.
엄마, 뭐 먹고 싶어?
-엄만 됐어. 너나 먹어.
하나 시켜.
-아니야. 엄만 배불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지 말고 시켜.
-그럼 그 검은 커피 하나 해라.
알았어.
그 딸은 한숨과 짜증이 살짝 섞인 목소리로 엄마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주문을 하러 갔어.
딸이 주문하러 가자마자 그 엄마는 장바구니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냈어.
빵이었어.
분명 방금 배부르다고 한 엄마가 쩝쩝, 쩝쩝.
손가락에 묻은 설탕까지 쪽쪽, 쪽쪽.
딸이 주문을 하고 돌아오자 반이나 남은 빵 봉지를 딸에게 살짝 밀었어.
딸도 자연스럽게 아까 자신의 엄마가 한 것처럼 쩝쩝, 쪽쪽.
엄마, 난 그들을 바라보았어.
당신의 입에 들어가는 건 뭐든 그렇게 아까워하는 엄마가 그저 안쓰럽고 속상해 왈칵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딸도,
딸이 고생해서 번 돈을 마셔도 그만 마시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소비에 미안해서 거절부터 하는 엄마도,
마치 엄마와 나의 모습 같아서 멍하니 바라보았어.
엄마.
엄마가 날 키우면서 십원 한 장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엄마, 그리고 아빠를 위해 돈을 쓰는 거 전혀 아깝지 않아.
아니, 그러려고 돈을 버는 걸..
오히려 없는 자식, 능력 없는 자식이라
죄송하고 죄송할 뿐..
커피숍에서 그렇게 그들을 보며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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