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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킹 아서: 제왕의 검_인간적인 킹 아서.

영화 이야기

by 푸른안개숲 2020. 7. 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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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영화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아서 왕(혹은 '아더 왕'이라고도 하지요), 멀린 마법사 등.

어렸을 때 만화에서도 꽤 접한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아쿠아맨』에서도 아쿠아맨의 이름이 '아서 커리'였죠. 아버지인 '탐'이 '아서 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계속 우려먹는 『아쿠아맨』 크크크~. 사골 우려먹듯 우려먹네요. 하하하.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거니까 이해해 주시길.)

 

'킹 아서'는 무엇보다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타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카메라 기법이 마치 게임 같기도 하고 신기하더군요!

'킹 아서'가 싸우는 장면은 '우오~'하면서 봤습니다.

전반적으로 전투씬이나 전쟁 씬이 화려한 촬영 기법으로 시선을 사로잡더라고요. 

 

영상 기법 쪽으로 뭐라 뭐라 전문 용어로 멋지게 설명을 하고 싶지만,

그 방면으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지라 이것으로 생략하겠습니다. 하하하.

 

내용의 흐름도 지루함이 없이 지나갑니다.

'킹 아서'(찰리 허냄 분)의 성장기, 일명 뒷골목 성장 일대기는 빠른 템포의 음악과 군더더기 없는 영상으로 주르륵 훑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킹 아서'가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한 수련 역시 일명 막 고생 일대기로 주르륵 훑어버리지요.

 

워낙 일부 장면들이 빠른 템포로 지나가다 보니 조금만 대사가 길어져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것을 '가이 리치' 감독님이 예견을 한 건지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해서 찰나의 지루함도 용납하지 않더군요.

확실히 이 영화는 촬영 기법, 편집 기법의 승리인 듯합니다.

 

'킹 아서'는 왕족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욕심 많은 아버지의 남동생, 그러니까 우리나라 친족 호칭으로는 '작은 아버지'죠, 보티건(주드 로 분)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잃습니다. 어릴 적의 그 충격적인 경험은 뒷골목에서 근육 엄청 키운 무서울 게 없는 성년으로 자라서도 매번 악몽으로 꿀만큼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요.

 

'킹 아서'는 준비된 왕이 아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성장형 왕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검의 무게로부터 도망치려고도 하는 나약함도 있지요. 그게 참 인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가끔씩 삶의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저마다 그걸 이겨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지요. '킹 아서'는 결국 출신에 걸맞게 백성 구제입니다.

 

'보티건' 역시 '악마'라기보다는 '악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권력에 취해서 왕의 자리를 욕심내고, 힘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의 피를 바치지요. 가족의 피를 바칠 때 냉혹하고 냉철하게 연을 끊는 게 아니라 슬픔에 몸부림치며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일명 '악어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진심으로 슬픈데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것이겠지요, 권력이라는 것이. 그리고 왕의 자리라는 것이.

 

하지만 이렇게 부당한 거래로 얻게 된 힘은, 그의 염원이던 타워가 부실 공사한 듯이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와장창 무너지더군요. 그 타워에서 살아 나온 '킹 아더'는 역시 주인공!

 

'킹 아더'는 귀족적인 자태보다는 그의 성장 환경에 맞게 '상남자' 냄새 풀풀 풍기는 '찰리 허냄' 배우님이 매력적으로 연기를 하셨고, 악인이지만 평생을 궁에서 산 '보티건'은 귀족적인 자태 줄줄 흐르는 '주드 로' 배우님이 마찬가지로 매력적으로 연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법사 역의 '아스트리드 베흐제 프리스' 배우님은 묘한 분위기가 휘감겨 있어서 절대 능력의 마법사라기보다는 종족이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사연 많은 마법사 캐릭터에 맞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세련된 영화를 보고 난 기분이 드네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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