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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부치는 열두 번째 편지 - 세수 -

엄마에게 부치는 편지

by 푸른안개숲 2024. 1. 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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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마,

어릴 때 엄마가 시켜준 세수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리울 때가 많아.

 

어릴 때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목을 쏙 빼고 있어.

그리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말이지ㅎㅎ

그럼 엄마가 내 목덜미 쪽에는 한 손을 두고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쓱쓱 문질러 주었잖아.

 

처음에는 물로 쓱쓱

그리고 다음에는 비누를 묻힌 손으로 쓱쓱

다시 물로 쓱쓱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로 또 한 번 쓱쓱

 

그 시간은 마치 경건한 시간인 듯 성스러운 시간인 듯. (출처: 픽사베이)

 

난 어푸어푸

엄마의 행동에 맞추어 숨을 꾹 참고

그리고 다음에 어푸어푸

 

얼굴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은 손이잖아.

내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면

엄마는 당신 손에 비누를 묻힌 후 

그 손으로 내 두 손을 문질러

크게 비누 거품을 내지 않아도 뽀득뽀득

기도하듯 두 손을 겹치고 문질문질

그리고 다시 각각의 한 손을 문질문질

 

엄마의 손과 비누 거품의 몽글몽글한 그 느낌이 좋아서. (출처: 픽사베이)

 

엄마의 손이 내 얼굴을 소중하게 문질문질하는 느낌이 좋아서 난 가만히 있어. 어푸어푸.

엄마의 손이 내 손을 감싸는 느낌이 좋아서 난 가만히 있어. 뽀득뽀득.

 

내가 학교에 다닌 후에도 집으로 들어오면

엄마가 가끔 화장실에서 내 손을 내밀게 해서 씻어줄 때가 있었잖아.

난 그럼 손을 쏙 내밀어서 엄마에게 맡기고 말이야 ㅎㅎ

청소년이 되었지만 난 그렇게 내 손을 씻어주는 게 좋았어.

 

비누를 조금 묻혀도 미끌미끌 내 손을 감싸서 씻겨주는 그 감촉이 좋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괜히 엄마가 화장실에 뭔가 씻고 있으면 손을 내밀 때가 있잖아?

그럼 여지없이 엄마는 어릴 때처럼 내 손을 씻어 줘.

 

엄마, 

난 그게 참 좋아.

내 손을 감싸는 엄마의 감촉이 너무 좋아♡

이미 훌쩍 커버린 딸의 큰 손을

여전히 작디 작은 어린 시절의 작은 손을 씻기듯

살살 뽀득뽀득 문질문질

 

엄마가 날 씻겨 준 그 무수한 횟수에 비해 난 엄마의 발을 씻겨 준 게 고작 두 번 뿐이네. 에휴.. 한심하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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