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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부치는 스물한 번째 편지 - 안경 -

엄마에게 부치는 편지

by 푸른안개숲 2024. 1. 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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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참 오래 안경을 썼다,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두운 교실과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안경에 빠져서 

괜히 보이는 데도 안경을 썼고 

그 때문에 결국 눈이 나빠져서 지금까지 안경을 쓰고 있잖아.

 

내 얼굴에 안경이 없는 건 이상할 정도야.

동그란 안경은 나의 신체 일부가 되어 버렸어.

 

근데 말이야.

예전에는 머리가 팽팽 돌도록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 좋았거든?

그래서 도수를 좀 높게 맞춘 거 같아.

 

그런데 나이를 한 두 살 먹을수록 흐릿한 게 좋아.

세상 그렇게 선명하게 봐서 뭐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조금은 흐린 눈으로 보는 게 편하달까?

눈에 부담이 없어.

내 마음이 보는 세상도 그런 거겠지.

그냥 선명한 것보다 적당히 뿌옇게 보이는 게 편해.

 

뭐 대강 보겠다는 의미지 ㅎㅎㅎ

 

이 사진 속 안경, 엄마가 두라는 대로 놔둬있네? 엄마가 이야기한 대로 나도 이렇게 둬. 잘했지? (출처: 픽사베이)

 

아무튼 엄마는 내가 침대 옆 화장대에 벗어놓은 안경을

아침에 씻어 주잖아.

그리고 일어나서 바로 안경을 쓰는 나에게

엄마는 기대하듯 물어보잖아.

 

"어때? 잘 보여? 깨끗해?"

 

그럼 난 조금은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고 말이야.

 

"세상이 다 보인다! 너무 잘 보인다!"

 

아주 잘 보인다고 나는 평소보다 좀 더 호들갑을 떨며 말해.

사실 잘 보이는 것도 맞는데

엄마의 정성에 정말 그 순간만은 안경 없이도 보이는 시력이 된 거 같아.

참 잘 보여.

 

고마워. 엄마.

내 안경을 항상 씻어줘서.

내 눈이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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