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참 오래 안경을 썼다,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두운 교실과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안경에 빠져서
괜히 보이는 데도 안경을 썼고
그 때문에 결국 눈이 나빠져서 지금까지 안경을 쓰고 있잖아.
내 얼굴에 안경이 없는 건 이상할 정도야.
동그란 안경은 나의 신체 일부가 되어 버렸어.
근데 말이야.
예전에는 머리가 팽팽 돌도록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 좋았거든?
그래서 도수를 좀 높게 맞춘 거 같아.
그런데 나이를 한 두 살 먹을수록 흐릿한 게 좋아.
세상 그렇게 선명하게 봐서 뭐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조금은 흐린 눈으로 보는 게 편하달까?
눈에 부담이 없어.
내 마음이 보는 세상도 그런 거겠지.
그냥 선명한 것보다 적당히 뿌옇게 보이는 게 편해.
뭐 대강 보겠다는 의미지 ㅎㅎㅎ
아무튼 엄마는 내가 침대 옆 화장대에 벗어놓은 안경을
아침에 씻어 주잖아.
그리고 일어나서 바로 안경을 쓰는 나에게
엄마는 기대하듯 물어보잖아.
"어때? 잘 보여? 깨끗해?"
그럼 난 조금은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고 말이야.
"세상이 다 보인다! 너무 잘 보인다!"
아주 잘 보인다고 나는 평소보다 좀 더 호들갑을 떨며 말해.
사실 잘 보이는 것도 맞는데
엄마의 정성에 정말 그 순간만은 안경 없이도 보이는 시력이 된 거 같아.
참 잘 보여.
고마워. 엄마.
내 안경을 항상 씻어줘서.
내 눈이 되어줘서..
엄마에게 부치는 스물세 번째 편지 - 엄마의 시선 - (2) | 2024.01.23 |
---|---|
엄마에게 부치는 스물두 번째 편지 -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 - (2) | 2024.01.22 |
엄마에게 부치는 스무 번째 편지 - 딴딴딴 - (0) | 2024.01.20 |
엄마에게 부치는 열아홉 번째 편지 - 단 한 번의 집중 - (0) | 2024.01.19 |
엄마에게 부치는 열여덟 번째 편지 - 침대, 그 속에 사랑 - (0) | 2024.01.18 |
댓글 영역